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루이나 계승전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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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하르슈타트 공국의 개입 시도 === [[아델하이트]]의 친정인 하르슈타트 공국은 이 전쟁에서 왕당파를 '''공식적으로 승인한 유일한 국가'''였다. 1883년 4월 18일 하르슈타트 공 프리드리히는 「제이머스 3세」를 루이나의 정당한 국왕으로 인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, 5월에 벨덴이 아닌 [[카엘몬트]] 성으로 공사를 파견했다. 그러나 이 승인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크지 않았다. 하르슈타트는 인구 40만이 채 되지 않는 대륙의 소공국이었고, 상비군은 6천 명, 해군은 존재하지 않았다. 공국이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에 그쳤다. * '''자금''' — 1883년 여름 공가 명의로 대륙 은행 두 곳에서 차관을 주선했다. 그러나 담보였던 왕실 사유 재산의 소유권 자체가 분쟁 중이었으므로 조건은 매우 불리했고, 실제 인출액은 요청액의 3분의 1에 못 미쳤다. * '''무기''' — 소총 약 1만 4천 정과 야포 22문을 매입해 선적했다. 이 가운데 남부 고지에 도달한 것은 1883년 7월의 1차분뿐이었고, 8월 이후의 선적분은 전량 나포되거나 중립항에 억류되었다. * '''외교적 중재 시도''' — 공은 1883년 9월과 1884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[[플로렌시아]]와 [[이베리아]]에 공동 중재를 제안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. 하르슈타트의 개입은 왕당파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이 되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. 의회파의 '''주권 논거''' — 대륙 출신 왕비가 외국의 힘을 빌려 루이나에 왕을 세우려 한다는 주장 — 을 사실로 입증해 주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. 1883년 여름 벨포르에서 발행된 소책자들은 하르슈타트 공사의 카엘몬트 부임을 두고 "왕비가 마침내 자기 나라의 깃발을 들여왔다"고 썼다. 전쟁이 끝난 뒤 하르슈타트는 승인을 철회하고 [[루이나 제1공화국]]과 관계를 정상화하려 했으나, 공화국은 1889년까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. [[아델하이트]]가 종신 국외 추방 처분을 받은 뒤 하르슈타트가 아니라 [[플로렌시아]]에 정착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. 친정 나라에 머무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부담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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